소설 7

[소설] 여름의 이야기 두번째,

뜨거운 여름날, 햇살은 유리창을 뚫고 마루까지 내려왔다. 집 안은 오래된 선풍기가 회전하며 내는 소리와 어릴 적부터 지민이에게 익숙한 고요함으로 가득 찼다. 지민은 시끄러운 TV소리,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더 익숙했지만 할아버지 집에서만 느낄수 있는 이런 느낌들도 좋은것 같다고 생각했다."지민아, 이리와서 수박 좀 먹거라."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 조용했지만 힘이 있었고 확신을 주는 느낌이 들었다.지민이는 읽고있던 책을 덮고 마루로 나왔다. 마루 가운데있는 오래되어 보이는 작은 평상위에 큼지막하게 잘린 수박 한 통이 올려져 있었다. 벌겋게 잘 익은 속살 사이로 까만 수박씨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지민이는 숟가락으로 빨간 과육을 파먹기 시작했다."할아버지, 수박은 왜 이렇게 씨가 많아요..

소설 2025.06.06

[소설] 봄의 이야기 일곱번째,

하늘은 맑았다. 그러나 그 맑음 속에 드리운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할아버지와 지민이는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오래된 눈을 깜빡이며, 손녀 지민이를 바라보았다. 지민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음 속에서 떠오르는 질문들을 정리하고 있었다."할아버지, 죽음은 뭐예요?"지민이의 질문이 할아버지를 멈추게 했다. 할아버지는 지민이의 눈을 깊이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죽음이라… 그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단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닐 수도 있지.""끝이 아니라고요?"지민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응, 우리가 떠나면 우리 몸은 이곳에 남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기억은 살아남고, 그 기억 속에 우리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말이야.""그럼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가..

소설 2025.02.15

[소설] 겨울의 이야기 다섯번째,

할아버지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차가운 겨울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흩날리게했고,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이러저리 굴러다니게 했다. 그의 옆에는 손녀 지민이 앉아 있었다. 한참 놀이터에서 동네 친구들과 놀더니 이제 제법 지친 모양이었다. 지민은 14살, 아직 세상의 많은 것들을 모르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할아버지, 하늘에 별이 왜 이렇게 많아요?" 지민이 물었다.아직 낮이라 별이 보일리 없을텐대,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가 대답하기전에 지민이 계속 말했다."저번에 엄마가 말했어요. 죽은 사람들은 별이 된다고, 그래서 별이 많다고."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지민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잠깐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그랬구나, 엄..

소설 2025.02.02

[소설] 겨울의 이야기 네번째,

어느 따듯한 오후, 할아버지와 손녀 지민은 거실에서 함께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빨간 체크무늬 담요를 무릎에 덮고, 지민은 작은 소파에 앉아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할아버지, 오늘 학교에서 친구랑 싸웠어요." 지민이 말을 꺼냈다.할아버지는 차 한모금을 마시고, 지민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랬구나, 친구랑 왜 싸웠니?"지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잠시 빌려갔는데, 그걸 돌려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화가나서 '왜 안 줘?'하고 말했는데, 친구도 화가 났나봐요. 이제 우리 사이가 좀 안 좋아요."할아버지는 낮은 한숨을 쉬고 지민의 손을 따듯하게 잡아주었다."지민아, 그런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거란다. 그 친구도 ..

소설 2025.02.01

[소설] 겨울의 이야기 세번째,

지민은 할아버지와 함께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할아버지의 작은 집은 언제나 따듯했고, 그곳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마치 오래된 보물처럼 소중했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지민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할아버지, 아빠는 왜 항상 바빠요?" 지민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지만, 곧 부드럽게 대답했다."음, 아빠는 너를 키우느라 바쁜거란다. 우리 때도 그랬지. 세상은 언제나 바쁘게 돌아가니까. 아빠도 그 속에서 일하고 돈을 벌고, 너한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려고 애쓰고 있어.""그럼 할아버지랑 같이 있으면, 아빠가 바빠서 안 올 때가 많은 거에요?" 지민은 조금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그건 아니란다. 아빠는 우리 지민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

소설 2025.01.30

[소설] 겨울의 이야기 두번째,

한 겨울, 낡은 집에서 할아버지와 손녀는 따듯한 벽난로 옆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집 안은 따스한 빛으로 가득했지만, 밖은 눈보라가 몰아치며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손녀인 지민은 이제 열 네살,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릴적부터 할아버지와는 늘 가까운 사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학교와 친구들이 더 중요해졌고, 할아버지의 말을 듣는 것보다 더 바쁜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눈이 내리는 날에 지민은 특별한 이유없이 할아버지 집에 찾아왔다. 할아버지의 집은 오래된 나무로 지어져, 그 나무 냄새와 벽난로에서 나는 따스한 연기가 지민을 편안하게 했다 ."할아버지, 옛날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지민이 말했다. 할아버지는 창문..

소설 2025.01.27

[소설] 겨울의 이야기 첫번째,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거실로 스며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옛날 사진 앨범을 펼쳐놓고 있었다. 앨범 속 사진은 조금 낡았지만, 여전히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은 선명했다. 할아버지가 손끝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미소를 지을 때마다, 그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손녀 지민은 고개를 기울이며 궁금한 듯 바라보았다.“할아버지, 그게 누구야?” 지민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눈은 빛나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할아버지는 한 손으로 안경을 고쳐 쓰고, 다른 손으로 사진을 가리켰다. “이건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너의 할머니랑 함께 찍은 사진이란다.”“할머니랑요?” 지민의 눈이 커졌다.“할머니는 어떻게 생겼어요? 할아버지랑 비슷해요?”할아버지는 잠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할머니는 할아버지랑 비..

소설 2025.01.27